세 가지 가설에서 시작했습니다
지난 글 「남가좌439 프로젝트」에서 이 프로젝트를 '관계안내소'라고 소개했습니다. 한 끼에서 시작해 생산자와의 만남, 지역 방문으로 이어지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기획만 존재할 뿐 아직 확인되지 않은 가설이었습니다. 먹는 경험이 지역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지, 그 관심이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우리가 이 일을 실행할 수 있는지. 세 가지 모두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2026년 여름, 넥스트로컬 8기 사업에 참여하면서 ‘지역자원조사’기간 동안 이 가설을 확인하는 과정을 진행했습니다.

지역을 정하는 과정
넥스트로컬은 서울의 청년팀이 지역과 연계해 사업을 만들도록 지원하는 지역연계형 청년창업 지원사업입니다. 첫 과제는 지역을 정하고, 그곳에서 사업으로 이어질 자원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검토한 곳은 밀양이었습니다. 구성원들이 오래 일했고 아는 사람이 많은 지역입니다.
두 달 동안 스무 명을 인터뷰하고 농가와 여섯 차례, 군 관계자와 두 차례 만났습니다. 지역 커뮤니티 모임에도 참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밀양이 대농 중심이어서 소규모 직거래 수요가 크지 않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함양은 조건이 달랐습니다. 지리산이라는 이름이 원물에 더해 주는 인지도가 있었고, 외부 방문자를 초대하는 활동에 익숙한 청년 커뮤니티가 있었습니다. 자기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청년 농부들도 있었습니다. 지역을 소개하려는 사람이 이미 있다는 점이 판단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기간이 많지 않았지만 지망 지역을 밀양에서 함양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직접 조사한 함양의 인지도는 낮았습니다. 수도권 시민 409명에게 물었더니 51%가 어떤 경로로도 함양을 접한 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지리산 권역 안에서도 실제 방문 경험은 13%로, 남원·구례·하동·산청보다 낮았습니다.
그러나 이 결과는 함양에 아직 소개할 여지가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함양과 서울을 연결하는 일이 정말 가치있는 일이 될 것이라는 근거였습니다.

양파를 선택한 이유
함양은 경남에서 가장 큰 양파 산지입니다. 다만 풍년이 들면 제값을 받지 못합니다. 마을 곳곳에 팔리지 않은 양파망이 쌓여 있었습니다. 원물로 나가지 못한 양파는 저장을 위해 양파즙 정도로 가공하는 것이 한계여서, 소비를 늘릴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현장에서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함양의 양파 농부 강호현농부님을 소개 받은것은 양파를 통해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국내에 생산되지 않던 다양한 양파종을 재배하고 판매했습니다. 스페인의 칼솟 요리의 재료가 되는 긴 대파와 같은 양파를 구하러 많은 셰프들이 강호현농부가 운영하는 파모니 농장을 찾습니다.
양파잼이라는 아이템
양파라는 아이템의 활용을 고민하면서 처음으로 양파잼이라는 것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양파잼은 두 시간 이상 저어 가며 카라멜라이징해 만듭니다. 이 때 양파의 단맛과 감칠맛이 살아납니다. 한 병을 만드는 데 네 시간이 걸렸습니다. 설탕을 줄이고 발사믹 식초와 사과주로 신맛과 향을 더해 함양 양파잼을 개발했습니다.

5일간의 팝업
8월, 서대문 남가좌동의 늦여름 베이커리와 함께 '함양to남가좌' 팝업을 열었습니다. 개발한 양파잼과, 그 잼을 사용해 함양 우리밀 도우로 만든 샌드위치 두 종을 판매했습니다.

준비한 물량은 모두 소진됐습니다. 샌드위치 136개, 양파잼 24병을 판매했습니다. 별점은 5점 만점에 샌드위치 4.78점, 양파잼 4.80점이었고, 재구매 의향은 69%였습니다.
다만 이번 팝업에서 확인하려던 것은 판매량이 아니었습니다.
159명의 응답

취식 후 설문에 응답한 159명의 이후 행동을 확인했습니다.
73명(46%)이 생산자에게 편지를 남겼고, 69명(43%)이 연락처를 제공했습니다. 92명(58%)은 지역과 관련한 오프라인 자리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으며, 47명(30%)은 생산자의 판매 페이지에 접속했습니다.
함양과의 심리적 거리를 묻는 문항에서는 참여 전 평균 300km에서 참여 후 104km로 줄었습니다. 응답자의 70%가 함양이 가까워졌다고 답했습니다.
먹는 경험이 지역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는 첫 번째 가설은 이 응답으로 확인했습니다.
결과를 지역과 공유했습니다
팝업이 끝난 뒤 결과를 정리해 함양을 다시 방문했습니다. 청년커뮤니티와 함께 공유회와 시식회를 열고 서울에서 받은 반응을 전달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네 건의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협약을 먼저 맺고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해 본 뒤에 협약으로 정리했습니다.
주간함양은 8월 24일 자 「서울서 실험한 함양의 맛, 함양 청년들과 잇는다」 기사에서, 함양에서 지역자원을 찾아 서울에서 소비자 반응을 확인하고 다시 지역 청년들과 결과를 나누는 과정을 넥스트로컬이 지향하는 지역연계 사례로 소개했습니다.
“함양에서 지역자원을 찾고 서울에서 소비자의 반응을 확인 한 뒤 다시 지역 청년들과 결과를 나누는 과정은 넥스트로컬이 지향하는 지역연계의 사례다.” -주간함양 08.24-
남은 과제
우리의 프로젝트가 아직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번 과정에서 확인하지 못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관심이 참여로 이어지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먹는 경험이 관심으로 이어진다는 점은 확인했지만, 그 관심을 지속적인 소비와 지역 방문으로 잇는 장치는 아직 만들지 못했습니다. 편지를 남긴 73명이 실제로 함양을 방문하는지는 다음 단계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둘째, 수요를 공급이 받치지 못했습니다. 팝업 기간에 물량이 소진됐지만 추가 생산이 어려웠습니다. 협력 베이커리의 생산 여력과 수작업 양파잼의 생산량이 함께 한계에 닿았습니다. 원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생산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 다음 과제입니다.